정토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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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종이란?

정토종이란?

정토종 (淨土宗)

 

 

아미타불(阿彌陀佛) 및 그가 출현할 정토의 존재를 믿고, 죽은 후 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대승불교의 일파이다. 아미타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의 아미타유스(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 또는 아미타브하(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아미타(阿彌陀)라고 음역하였고,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등이라 의역하였다. 아축불(阿贈佛)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의 정토도 여러 경전에서 언급되고 있으나, 아미타불의 서방정토가 대표적이다. 이를 미타정토라고 하는데, 이 미타정토의 신앙은 인도의 승려 용수(龍樹)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세친(世親)의 《무량수경우바제사(無量壽經優婆提舍)》 등에 나타나 있으나, 인도에서는 하나의 종파로 성립되지는 않았다.

 

미타정토의 사상이 중국에 전래된 것은 179년 후한(後漢) 때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이 번역된 것을 그 효시로 본다. 여산(廬山)의 혜원(慧遠)이 염불결사인 백련사(白蓮社)를 열어 주로 《반주삼매경》에 따라 견불왕생(見佛往生)하기를 바랐던 일은 유명하다. 그러나 일반에게 널리 유포된 것은 《무량수경》 《관(觀)무량수경》 《아미타경》의 이른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번역에서 비롯된다. 중국 정토종의 시조라고 하는 담란(曇鸞)은 앞의 세 권의 저서를 주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십주비바사론》의 난행(難行) ·이행(易行)의 이도설(二道說)을 근거로 타력본원(他力本願)을 주장하여, 처음으로 정토교의 교의를 천명하였다. 또한 삼론종(三論宗)의 길장(吉藏), 천태종(天台宗)의 지의(智勞) 등도 《관무량수경》의 주석을 지은 것을 보아 정토사상이 보편화하였었음을 알 수 있다.

 

 

당(唐)나라 때의 인물로 담란을 계승한 도작(道綽)과 그의 제자 선도(善導)가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당(唐)나라 때의 정토종은 말법(末法)사상이 팽배하던 당시에 시의적절하게 민중에게 전파시킬 수 있었다. 또한 혜일(慧日)은 720년경 인도 유학에서 돌아온 당시, 선종(禪宗) 측이 정토종을 가리켜 어리석은 사람을 인도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한 데 대해, 선가(禪家)의 ‘공복고심(空腹高心)’을 비판하고 염불왕생을 강조하였다. 이에 선가에서도 공명하는 사람이 생겼다. 영명연수(永明延壽)가 ‘선정쌍수(禪淨雙修)’를 고취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리하여 천태종 ·율종(律宗) ·화엄종(華嚴宗)에 속해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정토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며, 일반 사회인의 종교로서 민중 속에 깊이 보급되었다.

 

한국의 경우, 신라시대에 법위 ·원효(元曉) ·현일(玄一) ·경흥(憬興) ·의적 등이 정토신앙을 연구하였는데, 이들은 개인적으로 정토신앙을 믿었지 종파는 성립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의 정토종이 말법사상이라는 위기의식에 바탕을 둔 것인 데 반하여, 한국에서의 정토사상이 미륵(彌勒) 계통의 현실긍정적 세계관과 관련지은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정토 신앙연구는 일본 정토종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한불교정토종

 

淨土宗은 부처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정토왕생(淨土往生)이 이루어지기를 추구하는 불교의 한 교법(敎法). 정토왕생이란 엄한 계율생활과 수행을 하여 자력(自力)으로 불과(佛果)를 얻으려는 선종(禪宗) 등과는 달리 부처의 본원을 믿고 오로지 염불선과 참선을 모두 두루기본의 수행으로하며 아미타불 등 모든불보살님의 명호나 모든 염불로 기도하면  즉시 정토에 왕생하여 불퇴전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신앙이다.

 

본래 정토란 말은 여러 불보살들이 사는 곳을 말하며, 석가의 사후 신자들은 불탑(佛塔)과 불영(佛影), 보리수 등에 의해서 현재불(現在佛)이나 석가에 대한 귀의를 나타냈다. 시방세계(十方世界)에는 수없이 많은 부처들이 현존한다고 주장하는 대승불교의 흥성으로, 아축불의 동방묘희국(東方妙喜國)과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서방십만억토(西方十萬億土)의 극락세계에 태어나 견불문법(見佛聞法)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신앙이 발전했다.

 

특히 만인의 소원인 무량수(無量壽)와 무량광(無量光)을 가진 아미타정토사상은 서북인도의 쿠샨왕조시대인 100년 무렵에 성립되었다고 한다. 아미타정토를 설한 주요 경전은 《무량수경》 《아미타경》, 중국에서 지어졌다고 짐작되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등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다. 

179년 후한(後漢)의 영제(靈帝) 때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 의해 중국에 정토교가 전해졌고, 뒤에 구마라습(鳩摩羅什) 등에 의해 많은 정토교경전이 한역(漢譯)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경로인 실크로드의 주요 유적에는 정토교의 그림과 조각 등 예술작품이 많이 있다. 동진(東晉) 여산(廬山)의 혜원(慧遠)은 《반주삼매경》에 의해 시방현재불의 하나인 아미타불을 상념하는 백련사(白蓮社)라는 염불단체를 만들어 결사염불(結社念佛)을 창시했으며, 이것이 뒤의 칭명염불과 다르기는 하지만 정토교의 시조가 되었다. 

 

 

중국 불교에서 특히 강조하는 말법사상(末法思想)은 현실의 불안정한 세상에 실망하여 희망을 내세에 두려는 정토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불로장생법을 구하려던 담란(曇鸞)은 보리류지(菩提流支)로부터 《무량수경》을 받고 정토염불의 수행자가 되었다. 그의 저서 《정토론주》는 인도의 2대사상, 즉 세친(世親)의 정토론과 용수(龍樹)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을 융합시킨 것으로, 여기에 서민의 정토신앙의 실천사항으로서 예배(禮拜)·찬탄(讚歎)·작원(作願)·관찰(觀察)·회향(回向) 등의 오념문(五念門)을 설하며 중국 정토교의 기초를 확립했다.

 

이후 도작(道綽)과 선도(善導) 등에게 계승되어 중국인에게 적합한 불교로 성장해갔다. 당(唐)나라 중기 이후에는 우타이산[五臺山]의 법조(法照) 가 오회염불법사찬(五會念佛法事讚)을 중심으로 염불의 서민화와 보급에 힘썼다. 송(宋)나라 때에는 연사염불(蓮社念佛)이 저장성[浙江省]을 중심으로 유행했고 선정융합(禪淨融合)의 염불이 중국 불교의 주류가 되었다. 

한국의 정토교는 신라 때 원광(圓光)·자장(慈藏)·원효(元曉) 등에 의해 전개되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중국의 정토교가 《관무량수경》 중심인 반면 한국은 《무량수경》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중국·일본과는 달리 별도의 정토종은 성립하지 않았다.

 

 

자장은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 등을 지어 신라에서 처음으로 정토사상을 체계적으로 논하였다. 법위(法位)는 48원 하나하나에 최초로 원명(願名)을 붙였고 신라의 정토사상과 일본의 정토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정토사상의 대중화에 힘쓴 원효는 겸위성인설(兼位聖人說)을 주창하였고 염불은 순정심(淳淨心)을 가져야 하고 관불(觀佛)과 칭념(稱念)을 아울러 갖춘 칭관염불(稱觀念佛)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후기의 대표적 승려인 지눌(知訥)이 선(禪)의 입장에서 유심정토(唯心淨土)를 역설하였다.

 

신라 이후에 나옹화상은가장 많은 염불법문을 남긴 조사이다.

그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원하는 <서왕가>를 지어 염불하기를 권장하였고, <완주가>를 지어 유심정토의 깨달음을 노래하는가 하면, <승원가>를 지어 일상생활 가운데서 실천할 수 있는 염불법을 알기 쉽게 가르쳤다. 또한 <모든 염불인에게 보임>이라는 게송 8수를 남겨 염불로써 생사해탈과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간절히 권하였다.

나옹화상은 정토를 지향하여 선법으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는 반면에 근기 따라 염불을 권하여 다 함께 생사해탈의 길로 인도하였다.

나옹화상은 참선과 염불을 편견없이 수용하여 불법에 귀의한 사람은 누구든지 안심을 얻고 희망의 세계를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인도한 보기 드문 한국불교의 조사요, 선지식이다.

천태종계의 요세(了世)는 정토구생(淨土求生)을 역설하여, 죄악범부중생을 정토문으로 섭수(攝受)하려는 사상을 나타냈으며, 또한 보우(普愚)는 염불선(念佛禪)을 주장하였다.

조선 중기의 보우(普雨)는 불유융합(佛儒融合)의 일정론(一正論)을 주장한 사상가로, 선지(禪旨)를 논하면서 정토를 주장하였다. 기화(己和)는 선정양립(禪淨兩立) 아래 선사상(禪思想)과 정토사상을 동시에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 뒤 조선 중기의 대표적 불교사상가인 휴정(休靜)은 선에 기초를 둔 정토사상을 중시하면서 <정토는 오직 마음에 있다>는 유심정토설(有心淨土設)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大韓佛敎淨土宗 : 한국 불교 18개 종단 중의 하나.
삼국시대 이후의 여러 고승들이 유통시켜온 염불의 맥을 계승하여 1965년 신동환(申東煥)대종사에의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종맥을잇고 . 66년 대한불교정토종포교원으로, 72년 대한불교정토종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혜만 대종사로 종통의 맥을잇고 본사는 대전 광역시 유성구 원신흥동 337-2번지 에 두고 있으며 ,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정토삼부경《무량수경(無量壽經)》을 근본경전으로 한다. 살아 있을 때의 안락과 죽은 뒤의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자력과 타력염불신앙(自力他力念佛信仰)을 닦으며, 염불선과 참선 수행을 병행하여  성불을 목표로 삼고 있다. 주요행사로 음력 2월 15일의 열반절, 4월 8일의 석탄일 성도제일 미타제일 관음제일 지장제일 백중기도 등이 있다.

근대에들어 모든불교의 저변에 정토사상이 기본이며 미래적미륵사상과 연결이되는 독특한 정토종으로 발전하고있다.

대한불교 정토종은 현재 전국 10곳의 교구원과 5지구 지교구가있으며 200여곳의사암에서 불법(佛法)을 포교하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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