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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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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3 17:34 조회1,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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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서원

원(願)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바라는 것 즉 바램이 원일 것이다.

바램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우리 불제자라면

자기 자신만을 위하거나 세속적 이익과 욕망을 성취하는 바램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과 원을 세워봄이 마땅하리라.

관세음보살께서는 "만약 언제 어느 곳에서든 고통과 괴로움에 빠진 중생이

나를 부를 때는 반드시 그곳에 가서 구해내리라.

만약 그렇지 못할 때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는 원을 세우셨고

또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중생을 모두 구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 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셨다.

이렇듯 불보살님들의 원은 많은 사람을 구해내고자 하는

큰 마음이 서려 있어 우리를 감동케 하며 또한 기쁘게 한다.

이런 여러 불보살들의 별원(別願)을 크게 4가지로 정리하여

총원(總願)이라 이르니 이를 사홍서원(四弘誓願)이라 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衆生無邊誓願度)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煩惱無盡誓願斷)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法門無量誓願學)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佛道無上誓願成)

서원(誓願)이란 불도(佛道)를 수행함에 있어 스스로 깨달음을 얻겠다고 맹세하고,

타인을 구제하겠다고 맹세하는 것 또는 그렇게 원하는 것이니,

이는 불교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요, 신행생활의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염 불

염불이란 부처님을 기억하며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온갖 번뇌를 소멸하고 정각을 얻어 니르바나(열반)에 이르기를 소원한다.

바른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성자(聖者)가 되는 것,

이는 곧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건립된 극락정토(極樂淨土)는 '청정하고 안락한 국토'라는 뜻으로

다섯가지 흐린 것(五濁)이 없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한 모든 괴로움이 없으며,

오직 즐거움만 있는 세계로서 생사 윤회하는 삼계(欲界. 色界. 無色界)를 뛰어넘은

영원한 낙토(樂土)임을 경전에서는 찬탄하여 마지 않는다.

극락정토는 모든 불·보살이 수용하는 청정한 보토(報土)인 동시에

중생들 또한 번뇌 업장만 소멸하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상주불멸한 실상(實相)의 경계인 것이다.

이러한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온갖 번뇌를 소멸하고

정각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적은 선근(善根)과 적은 복덕(福德)으로는 불가능하니,

극락 왕생하기 위한 큰 선근과 거룩한 복덕으로 경전에서는 염불을 얘기하고 있다.

신라의 원효스님께서는 『나무아미타불』 여섯자만 지극한 마음으로 외면

서방 극락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염불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칭명(稱明) 염불 :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부르는 염불

·관상(觀像) 염불 :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모습)를 생각하는 염불

·관상(觀想) 염불 : 고요히 앉아서 부처님의 지혜 공덕을 생각하는 염불

·실상(實相) 염불 : 부처님의 법신 곧 일체 만법의 본바탕은

있는 것(有)도 아니고 공(空)한 것도 아닌 중도의 실상임을 생각하는 염불

일체 만유의 근본 자성이 아미타불이요,

극락정토 역시 같은 자성인 청정심으로 이루어진 경계이니,

마음이 오염되면 그에 상응한 삼계 육도에 윤회하는 고뇌를 벗어날 수 없으며,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常樂我淨)한 극락정토의 청정한 행복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 도

지금 우리의 불교 모습을 '기복불교'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처님을 신격화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복을 구하는 모습이

미신적이며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불교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도(祈禱)는 기원(祈願)이라고도 하며 불·보살의 가피력을 빌어 재앙을 없애고

복이 늘도록 비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본래 기도를 하지 않았으나

서원·본원 사상이 생기면서 자신이 지은 공덕을 남에게 베풀어줌으로써

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러가지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세월이 흐르면서 불자들은 위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여시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정진했던 석존에 대한 흠모와

우러름이 기도의 형식으로 변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온 우주 공간에 구원의 손길을 보내고 계시며,

지금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일맥으로 통한다는 것을 믿고

부처님께 일심으로 귀의하며 간절히 소망하면,

부처님의 구원의 가피력을 입어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집중하여 기도하면

업장이 소멸되며 기원이 성취된다.

이는 사실이며 우리는 실례를 수많은 기도 영험을 통해 우리 주위에서 보아왔고 들어왔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마음가짐이며 회향하는 정신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계되어 존재하고 있으므로

나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이 불행하면

아무리 나 혼자 불행해지지 않으려 해도 불행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행복을 기원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행복을 기원해야 하며

설사 나의 행복을 기원했다 하더라도,

기도의 가피를 입으면 이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회향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행복으로부터 이웃의 행복을 함께 함도 훌륭한 일 아닌가.

아울러 더 나아가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마땅히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쉼없이 중생들을 향해

자신을 희생시키며 나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자력적 기도로 발전해 가야 할 것이다.

기도는 자신의 해이해진 믿음을 다지고 확인하는 기회이며 서원·발원의 시간인 것이다.

★선(禪)

선(禪)이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자신의 가능성(佛性)을 발견하고 부처와 자신이

둘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안정시켜 혼탁한 의식과 거칠고 불순한 감정을 없앰으로써

자신의 본성, 불성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선의 목적이다.

교(敎)가 부처님의 말씀이라면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보다 직선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부처님의 교법 안에 있는 선을 관선(觀禪)이라 하고

부처님의 교법 밖에 있는 선을 참선(參禪)이라고 한다.

관선이란 마음으로 지극하게 생각해서 보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

사념처(四念處)라는 수행법이 있다.

사념처에 의해 나의 마음을 관하게 되면 그 어떤 사람이나

물질에 대해 집착할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관선에 대비되는 참선은 중국에서 확립된 부처님 설법 밖의 수행법으로,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默照禪)이라는 두개의 큰 가닥이 있다.

묵조선은 묵묵히 자기 마음자리를 돌아보는 수행법이고,

간화선은 화두에 의지하여 닦는 선법으로 화두선(話頭禪)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간화선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선을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니,

온갖 더러움과 어리석음에 싸인 중생이 본래 우주와 하나인 영체, 즉 부처라고

일컬어지는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닦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무시선(無時禪)이라.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일상 생활

그대로가 곧 선일수 있으니,

선을 닦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도 훌륭한 선인 것이다.

우린 가끔 삶의 허망감에 빠진다. 어제까지 아무 일없이 즐겁게 만났던 사람을

하루 아침에 교통사고로 그를 여의어야 했을때..., 늘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내일에 대한 불안감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생계를 위한 삶을 살며

삶에 지쳐 이 힘든 삶을 왜 살아야 하나! 하며 한숨 지으면서... 우린 삶의 무의미성에 빠진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해줄 수 있는 수행법으로 선 수행법이 선용(善用)되어 왔다.

기도·염불·간경 등 여러 바라밀과 더불어 이를 열심히 행한다면

분명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념적 대답이 아닌 몸으로 증득되는 대답을. 또한 설사 나의 뿌리를 찾지 못하더라도,

다만 하루 10분만이라도 모든 세속적인 끄달림을 여읜채 내 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곧 창조적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사 홍 서 원

1.이 땅에 고통받는 중생이 한 사람도 없는 정토세계를 이루겠습니다.

2.어떤 경우에도 괴로움과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행정진하겠습니다.

3.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하며 모두 배우겠습니다.

4.일체중생과 더불어 꼭 성불하겠습니다.

★오 계

"나 없는 세상에서 너희가 의지해야 할 곳은

오직 자신의 본성과 나의 가르침인 계 뿐이니라.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하셨습니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키겠습니다.

출신성분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피부빛깔이나 종족에

관계없이 신체장애나 남여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명의 존엄성을 불자는 굳게 믿습니다.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키겠습니다.

인간의 귀천은 그 행위에 의해서만 결정되므로 정당한

노동에 의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은 중생의 노고를

도둑질하는 것이 되므로 성실한 삶을 살 때만이

삼륜이 청정한 보시행임을 불자는 굳게 믿습니다.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인간은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키겠습니다

스스로 마음과 육신을 청정히 지킬 때만이

욕망으로인해 존엄한 인격이 노동의 도구나 성적 도구, 전쟁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불자는 굳게 믿습니다.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항상 진실만을 추구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키겠습니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하여 거짓으로 중생을 현혹해서는 안되며

올바르게 살려는 끝없는 구도적 자세만이

일체의 거짓과 허상을 타파하고 진실을 볼 수 있음을 불자는 굳게 믿습니다.

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

맑고 안정된 소견을 가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키겠습니다.

거짓가치에 물들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시키는

중독성 물질의 섭취나 거짓 문화를 즐기지 않는 것이

올바른 소견으로 살아가는 길임을 불자는 굳게 믿습니다

격류를 건너는 떼목과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오계를 받아 지키어 청정한 삶을 살겠습니다.

거짓된 삶을 오래 살기 위하여 비굴하게 사느니보다는

하루를 살고 죽더라도 오계를 지키는 진실한 삶을 살겠습니다.

★수 계

불교 신행생활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깨달음의 순간..... 지극한 기도에 불보살의 감응이 오는 순간.....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염송하며 연비를 받는 순간.....

계는 무소유에 입각하여 절대적 가치인 생명을 기준으로 삼았기에

우리들 삶의 절대적 가치기준이 된다.

과거의 악업을 되풀이 하지 않고 나와 남이 함께 선업을 쌓아 고통을 극복하고

불세계로 가기위한 행동의 지표가 바로 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계는 거짓 가치를 버리고 올바른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살겠다는 서약인 것이다.

삼보에 귀의하며 승가의 큰 다섯가지 규율을 내 삶의 지표로서 받아 안으며

늘 몸에 지닌다는 약속이다. 이는 이리 저리 방황하다 이제 불법을 만나

올바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거룩한 맹세이니,

곧 육신을 바꾸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수계식을 통해

나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만인에게 공포함으로써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동참을 선언하는 것이다.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不 殺 生]

생명이란 절대자유와 절대평등의 불성을 실현하는 주체이며 불성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그 자체가 그대로 목적이 된다. 생명의 존엄성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니,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차별받거나 핍박이나 억압을 받아서는 안된다.

우린 생명의 외경을 통해 자비의 종자를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뭇 생명의 절대존엄, 이는 붇다의 첫 일성이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不 偸 盜]

이는 인간의 성실성에 대한 가치를 말한다. 진실한 노동의 대가, 정당한 대가를 바람을 말하리라.

또한 '주지않거든 취하지 말라'는 계본과 함께 물욕을 줄이라는 계본일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적게 소유하는, 나의 이익을 바라지 않고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며,

또한 선업의 공덕으로 더 많은 사람을 보살펴주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탐욕에 기반을 둔 가치를 갖고 있는 한 우리는 도둑의 업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쉽게 일하고 보다 많은 대가를 받으려는

가치관에 갇혀 있는 한 도둑의 죄업을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소유, 그것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함께 열반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不 邪 淫]

이는 쾌락을 얻기 위해 인간을 도구 삼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음탕한 마음을 제거하며 청정의 종자를 키워 나가야 함을 말함이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不 妄 語]

이는 인간의 진실성에 대한 가치를 말한다. 우리의 자성(自性)은 진실과 참 그 자체이다.

우린 그러한 진실함을 통해 우리 마음을 한 티끌도 끼지 않은

저 맑은 명경지수와 같이 맑혀가며 참됨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은 수많은 믿음이 전제되어 있으며

그러한 우리의 탄탄한 신뢰속에 이 사회는 운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거짓말은 우리 이웃을 져버리는 일이요,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상대의 지혜를 흐리게 하며,

지혜의 눈이 흐려지면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없게 되고

끝내는 방황하며 악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남에게 악업을 짓는 동기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니

그 죄업은 더욱 크리라. 우린 진실함을 지키는데 게으름 없이 정진해야겠다.

술을 먹지 말라 [不 飮 酒]

술은 지혜를 흐리게 한다고 한다. 우리의 자제력을 흐트러뜨리며 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우린 술을 삼가며,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지 말며 지혜의 종자를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계(戒)는 목숨을 다하여 지켜야 한다. 그러나 계를 지킨다는 것은

계의 올바른 정신을 지킨다는 것이지 계의 자구(字句)를 그대로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즉 계의 상징성 역사성에 비추어 그 근본정신을 찾고 생명의 계인

'불살생계'를 중심으로 상황에 따라 파계가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를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계를 굳이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한 두 번의 파계가 습관화 되어

항시 변명으로 흐를 소지가 있음을 우려함이다.

아무리 옳은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행위 자체가 다 합리화 될 수는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계를 파했을 때는 느끼는 즉시 그 자리에서 참회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을 해야 한다.

우린 계가 우리의 행동을 억압하는 사슬이 아닌 계를 지킴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불자가 되어야 겠다.

★참 회

참회란 과거로부터 지어 온 잘못은 물론 현재 생활하는 가운데

지은 모든 허물과 잘못을 뉘우치고,

또다시 저지르지 않겠다고 부처님 앞에 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회란 무엇인가?

참(懺)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침이다. 전에 지은 악업인 어리석고 교만하고

허황하고 시기 질투한 죄를 다 뉘우쳐 다시는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회(悔)란 다음에 오기 쉬운 허물을 조심하여

그 죄를 미리 깨닫고 아주 끊어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육조단경 참회품]

우리는 항상 변함없이 몸을 움직이고, 생각하며 말을 합니다. 이중 어느 하나도 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쉬지 않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말로서 행하는 모든 것이 업입니다.

우리가 숨쉬는 것도 업 (業)이고 혼자서 공상하는 것도 업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직접 움직이는 것은 더 할말이 없겠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업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우리는 업을 만드는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이루어 놓은 업이 옳고 그른지는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판단하거나, 우리 자신에게 너무나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를 받고 그 계에 맞추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생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계에 비추어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합리화해서 그냥 넘겨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행한 업중 지나간 나의 잘못된 업에 대해서 뉘우쳐야 합니다. 이것이 참(懺)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잘못을 지었을 때만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이것도 어찌보면 합리화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잘못을 지었을 때 뉘우치고, 그와 같은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

다음에는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야합니다.

이렇게 뉘우치며 앞으로의 일을 조심하는 것이 회(悔)입니다.

매일매일 자신이 지은 잘못을 참회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올바른 삶의 모습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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