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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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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3 17:35 조회1,0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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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의 의의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 내면의 믿음을

외형적 의식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식으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물질적 공양과 정신적 공양이 있으니,

이를 불공(佛供)이라고 한다. 즉 부처님을 믿고 그 공덕을 찬양하며 자비에 의거하여

더욱 기쁜 마음으로 정진하고 바르게 살 것을 다짐하는 구체적인 믿음의 표현이

후세에 오면서 향, 꽃, 차, 과일 등의 음식을 불전에 올리고

개인적인 복을 비는 일정한 형식을 이루게 된 것이다.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고 헌물을 하는 이러한 모습들은 단순한 기복이 아닌

흩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믿음을 다짐하여 자기 소유의 것을

이웃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향·촛불과 같은 삶으로

향과 초는 자기 몸을 태움으로써 아름다운 향기와 광채를 발산한다.

향은 여러가지 모양과 빛깔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함께 태울 때 그 연기는 하나로 된다.

이것은 이기심과 자만심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이 화합함을 뜻한다.

그리고 초는 자기의 몸을 태움으로써 밝은 빛을 내어 어둠을 밝힌다.

이것은 아름다운 자기 희생인 것이다.

부처님 전에 향을 사르고 촛불을 밝히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 마음의 향기를 배어 내며 어둠을 밝히는 삶을 살겠다는 굳은 서원의 표현인 것이다.

마음의 등불을 밝히며....

우린 초파일 때 사찰에 가서 연등을 밝힌다. 인류에게 밝은 지혜와 바른 길을 보여주며

고뇌에서 벗어난 참된 행복을 일깨워 준 거룩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흠모하며

당신의 탄생을 축복하고픈 마음일 것이다. 아울러 등이 어둠을 밝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스로 깨달아 마음의 어둠을 쫓고 실천함은 물론 이를 널리 전하여

이 세상을 두루 밝히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연등을 밝히면 부처님이 더 예뻐하지 않으실까.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먼저 깨달음을 구하고, 다음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경전속의 불교 용어

★.사 성 제(四聖諦)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진리의 법을 닦아 행하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괴로움의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

도달할 수도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다.

둘째는 괴로움의 집기의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다.

셋째는 괴로움의 멸함의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다.

넷째는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의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진리인가(苦聖諦).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란

나는 괴로움·늙는 괴로움·앓는 괴로움·죽는 괴로움과 근심·슬픔·번민의 괴로움과

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니,

통틀어 말하면 다섯 가지 취한 근간의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집기의 진리인가(集聖諦).

이른바 괴로움의 집기의 진리란 애정이 탐욕과 어울려 마음이 항상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집기의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멸함의 진리인가(滅聖諦).

이른바 괴로움의 멸함의 진리란 그 애욕이 아주 없어져 남음이 없고

다시는 새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멸함의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의 진리인가(道聖諦).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의 진리란 곧 성현의 여덟 가지 길이니,

이른바 바른 소견(正見)·바른 생각(正思)·바른 말(正語)·바른 업(正業)

·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기억(正念)·바른 집중(正定)을 말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의 진리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진리는 진실함이요 허망하지 않고

세존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라 한다.

모든 중생으로서 두발 갖이·세발 갖이·네발 갖이나,

애욕의 세계·색의 세계·색이 없는 세계·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세계의 여러 중생 중에서 여래가 최상이신 데,

여래가 이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네 가지 진리라고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가지 진리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언제나 나고 죽음 속에 있어서 다섯 길을 바퀴돌게 된다.

이제 나는 이 네 가지 진리를 얻었기 때문에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갔으며,

이 진리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나고 죽는 근본을 끊어,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증일아함경 제17권 】

★.팔정도(八正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 제타숲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삿됨과 바름이 있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겠다.

어떤 것이 삿됨인가. 삿된 견해와 나아가서는 삿된 선정이다.

어떤 것이 바름인가. 바른 견해와 나아가서는 바른 선정이다.

어떤 것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보시가 있고 여래의 교설과 재(齋)가 있으며,

선한 행위, 악한 행위와 선하고 악한 행위의 갚음이 있고,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고,

부모가 있고 중생의 태어남(生)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아라한이 열반으로 잘 향하고 잘 이르러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하고(我生已盡) 범행은

이미서며(梵行已立) 할 바를 모두 마친(所作已作)곳에 완전히 머물러

뒤의 몸을 받지 않음(不受後有)을 스스로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괴로움에관해서 확실히 통찰하고, 괴로움의 원인에관해서 확실히 통찰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길을 확실히 통찰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길에 관해서 확실히 통찰하는 것을 올바른 견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바른 뜻(正思惟)인가.

탐욕을 여읜 뜻, 성냄이 없는 뜻, 남(중생)을해치지 않는 뜻이다.

어떤 것이 바른 말(正語)인가.

거짓말,헐뜯는 말, 거친말(욕설), 쓸데 없는말을 떠난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으며, 잘못된 애욕행위를 떠난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正命)인가.

의복, 음식, 와구, 탕약을 법다이 구하고, 법답지 않게 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노력(正精進)인가. 하고자 함(欲)과 정진(精進)의 방편이니 번뇌를 떠나며,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항상 물러섬이 없이 행하는 것이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이나 좋지 않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결심하고 노력하고

전력을 기울려 마음을 다잡아 애쓴다.

이미 일어난 악이나 좋지 않은 행위를 버리기 위해 결심하여 노력하고

전력을 기울려 마음을 다잡아 애쓰고.

이미 일어난 선한 행위는 머물러 흩어지지 않게 기르고,

충만 하게 이루어 성취케 하려는 결심을 하여 노력하고 ,전력을 기울려 마음을 다잡아 애쓴다.

어떤 것이 바른 생각(正念)인가. 진리를 수순(隨順)하는 생각이니 헛되고 망녕되지 않는 것이다.

몸에서는 몸을 전심전력으로 마음집중하여 분명한 앎으로 계속 관찰한다.(무상,고,,무아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마음집중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탐욕과 근심을 버린다.

이와같이 감각에서,마음에서,법에서는법을 전심전력으로 마음집중하여

분명한 앎으로 계속 관찰한다.(무상,고,,무아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마음집중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탐욕과 근심을 버린다.

어떤 것이 바른 선정인가(正定)인가. 마음을 어지럽지 않은 곳에 머물러 두고

굳게 거두어 가져, 고요히 삼매(三昧)에 든 한 마음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잠아함, 사정경(邪正經)]

★.오 온(五蘊)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항상됨이 없다. 혹은 인으로, 혹은 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색이 생기더라도

그것도 또한 항상됨이 없느니라. 항상됨이 없는 인과 항상됨이 없는

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색이 어떻게 항상됨이 있겠느냐.

이와 같이 느낌(受)·생각(想)·결합(行)·식별(識)도 항상됨이 없는 인연으로 생긴

그것들이 어떻게 항상되겠느냐.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색은 항상됨이 없고, 느낌·생각·결합·식별도 또한 항상됨이 없느니라.

항상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거룩한 제자로서 이렇게 관찰하면 그는 곧 색을 싫어하고, 느낌·생각·결합·식별을 싫어하느니라.

싫어하면 즐겨하지 않고, 즐겨하지 않으면 해탈하며, 해탈하면 지견이 생기나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아느니라.”

이때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1권 ]

★.십이연기(十二緣起)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의 제타숲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인연법(因緣法)을 설명하리니 잘 기억하고 그 행을 닦아 익혀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분부를 받았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인연법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고, 결합을 연하여 식별이 있으며,

식별을 연하여 이름과 색이 있고, 이름과 색을 연하여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있으며,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연하여 부딪침이 있고, 부딪침을 연하여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연하여 갈애가 있고, 갈애를 연하여 취함이 있으며, 취함을 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연하여 남이 있으며, 남을 연하여 헤아릴 수 없는 늙음·앓음·죽음과 근심·고통·번민이 있다.

이리하여 다섯가지 근간의 몸을 이루었느니라.

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괴로움을 모르고 그 집기와

그 멸함과 그 멸하는 길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이라 한다.

결합[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결합에는 세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이른바 몸의 행, 입의 행, 의지의 행이니 이것을 결합이라 하느니라.

식별[識]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식별이니,

여섯 가지란 이른바 눈, 귀, 코, 혀, 몸, 의지의 식별이다. 이것을 식별이라 한다.

이름[名]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네 가지 색이 없는 근간이니,

즉 느낌의 근간, 생각, 결합, 식별의 근간이니, 이것을 이름이라 한다.

색[色]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몸이니,

이것을 색이라 하며 이름은 각각 다르므로 이름과 색이라 하느니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處]이란 무엇인가. 주관적인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니,

이것은 이른바 눈, 귀, 코, 혀, 몸, 의지의 감각기관이다. 이것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라 한다.

부딪침[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부딪침 몸이다.

여섯 가지 부딪침이란 즉 눈, 귀, 코, 혀, 몸, 의지의 부딪침이니 이것을 부딪침이라 하느니라.

느낌[受]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 이것을 느낌이라 한다.

갈애[愛]란 무엇인가. 이른바 세 가지 갈애 몸이 그것이니,

애욕의 갈애, 존재의 갈애, 존재 없음의 갈애이니라.

취함[取]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네 가지 취함이 그것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즉 탐욕의 취함, 소견의 취함, 계율의 취함, '나'의 취함이다.

이것을 네 가지 취함이라 한다.

존재[有]란 무엇인가. 이른바 세 가지 존재이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애욕의 존재, 색의 존재, 색이 없는 존재이니 이것을 존재라 한다.

남[生]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남이란 어느 집의 태에 들어 갖가지 존재를 받아

다섯 근간을 얻고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받는 것이니 이것을 남이라 하느니라.

늙음[老]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들의 몸에서 이가 빠지고

머리털이 세며 기력이 쇠하고 감관이 무르녹으며,

수명이 날로 줄어들어 본래의 정신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

죽음[死]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들이 받은 몸의 온기가 없어지면서 덧없고

변하여 다섯 친척이 각기 흩어지며 다섯 근간의 몸을 버리고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그러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것이 인연법으로서 그 이치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모든 부처 여래가 큰 자비를 일으켜 베풀어야 할 일을 나는 이제 마쳤다.

너희들은 나무 밑이나 한 데서나 혹은 무덤 사이에서 이것을 생각하고 좌선을 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지금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증일아함경 제48권 】

★.중 도(中道) 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나알리부락 깊은 숲 속의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이란 어떤 것이 바른 소견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떻게 바른 소견을 시설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에는 두 가지의 의지함이 있으니 혹은 유(有)요 혹은 무(無)다.

취함[取] 때문에 부딪쳐지고, '취함'이 없으면 마음이 경계에 매이더라도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게 되어, 내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두고

괴로움이 멸하면 멸하는 대로 두어, 그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나니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이것을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세간의 집기를 바르고 참되게 알고 보면,

혹은 세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세간의 멸함을 참다이 알고 보면,

혹은 세간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일러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고‥‥‥내지 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중 도(中道) 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셨다.

때에 집을 나온 어떤 바차 종족은 부처님께 나아와 합장하고

문안을 드린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내가 있습니까."

이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세존께서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으셨다.

때에 바차는 생각하였다. '나는 세 번이나 물었으나

사문 고오타마는 대답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만 돌아가리라' 그때에

존자 아난은 부처님 뒤에서 부채로 부쳐 드리고 있다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바차는 세 번이나 여쭈었는데 세존께서는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시나이까.

그것은 저 바차로 하여금 '사문은 내가 묻는 것을 대답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더하게 하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하셨다.

"내가 만일 '나'가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가 가진 삿된 소견을 더하게 할 것이요,

만일 내가 나는 없다고 대답한다면 그가 가진 의혹을 더욱 더하지 않겠느냐.

본래부터 '나'가 있었는데 지금 끊어졌다고 말하여야 하는가.

만일 본래부터 '나'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상견(常見)이요.

지금부터 끊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단견(斷見)인 것이다.

여래는 그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 서서 설법한다.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나는 것이다'고. 즉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고

내지 남·늙음·앓음·죽음과 근심·슬픔·고통·번민이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34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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