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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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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3 17:36 조회1,1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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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업 (十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국에 노니시면서 제타숲 동산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일부러 짓는 업이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 과보를 받되

현세에서 받거나 후세에서 받는다고 말한다.

만일 일부러 지은 업이 아니면, 나는 반드시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중에는 몸으로 일부러 짓는 세 가지 업이 있다.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한다.

입에는 네 가지 업이 있고, 뜻에는 세 가지 업이 있다.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한다.

어떤 것이 몸으로 일부러 짓는 세 가지 업 (身業)으로서,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째는 산목숨을 죽이는 것 (殺生)이니, 지극히 악해 피를 마시고 그것을 해치고자 하며

중생과 내지 곤충까지도 사랑하지 않는다.

둘째는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 (偸盜)이니,

남의 재물에 집착하여 도둑질할 뜻으로 그것을 취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음 (邪 )이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보호하는 바 있고,

혹은 어머니의 보호하는 바 있고, 혹은 부모의 보호하는 바 있으며,

혹은 자매(姉妹)의 보호하는 바 있고, 혹은 형제의 보호하는 바 있으며,

혹은 아내의 부모가 보호하는 바 있고, 혹은 친친(親親)의 보호하는 바 있으며,

혹은 같은 성(姓)의 보호하는 바 있고,

혹은 남의 부녀로서 채찍의 벌을 받는 두려움이 있으며,

이름을 빌린 여자 내지 화환으로 장식한 여자가 있으니, 이러한 여자를 범(犯)하는 것이다.

이것을 몸으로 일부러 짓는 세가지 업이라 하고,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입으로 일부러 짓는 네 가지 업 (口業)으로서,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째는 거짓말 (妄語)이다. 그는 대중 가운데 있거나 권속들 가운데 있거나

혹은 왕가(王家)에 있어, 만일 그를 불러 ‘너는 알거든 곧 말하라’고 물으면,

그는 모르면서 안다 하고 알면서 모른다 하며,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하고

본 것을 보지 않았다 하며, 자기를 위하거나 남을 위하고

혹은 재물을 위해,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간하는 말 (兩舌)이니, 남을 갈라서게 하고자 한다.

여기서 듣고 저기에 말해 이것을 부수고자 하고, 저기서 듣고 여기에 말해 저것을 부수고자 한다.

모인 자는 떠나고자 하고 떠난 자는 다시 떠나, 그러면서 당파를 즐기며 당파를 칭찬해 말한다.

셋째는 추한 말 (惡口)이다. 그가 만일 말을 하면,

말 기운은 추악하고 악한 소리는 귀에 거슬러, 여럿이 기뻐하지 않고 여럿이 사랑하지 않으며,

남을 괴롭게 하여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한다. 그는 이러한 말을 한다.

넷째는 꾸며대는 말 (綺語)이다. 그는 때 (時)가 아닌데 말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며,

뜻이 없는 것을 말하고 법이 아닌 것을 말하며, 지식(止息)이 아닌 것을 말한다.

또 다시 지식 아닌 일을 칭찬하고, 때를 어기어 잘 가르치지 않으며, 또한 잘 꾸짖지도 않는다.

이것을 입으로 일부러 짓는 네 가지 업이라 하고,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의지로 일부러 짓는 세가지 업 (意業)으로서,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째는 탐냄 (貪愛)이다. 남의 재물과 모든 생활의 기구를 항상 엿보고,

구하고 바래어 나의 소득으로 만들고자 한다.

둘째는 미워하고 성내는 것 (瞋 )이다. 마음에 미움을 품어 이런 생각을 가진다.

‘중생은 죽어야 하고 묶어야 하며, 재물을 빼앗아야 하고 파면시켜야 하며,

배척해 쫓아내야 한다’고. 그래서 그로 하여금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도록 한다.

셋째는 삿된 소견 (痴暗)이다. 그의 소견은 거꾸로 되어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보시(布施)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주설(呪說)도 없다.

선과 악의 업도 없고 선악 업의 과보도 없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없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세상에는 진인(眞人)이 사는 좋은 곳도 없고,

이 세상 저 세상에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는 것도 없다.’고.

이것을 의지로 일부러 짓는 세 가지 업이라 하고,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중아함경 제3권 ]

★. 십 이 처(十二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고오타마시여, 이른바 일체란 어떤 것을 일체라 하나이까."

"일체란 곧 열두 가지 포섭처〔十二入處〕이니,

눈과 색·귀와 소리·코와 냄새·혀와 맛·몸과 촉감·의지와 법이다. 이것을 일체라 하느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것은 일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사문 고오타마의 말하는 일체를 버리고 따로 다른 일체를 세우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말만 있을 뿐으로서, 듣고도 알지 못하여 그 의혹만 더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율의 아닌 것에 머무르면

이들 모든 비구는 긴 밤 동안에 큰 고통받으리.

이 모든 율의에서 언제나 부지런히 닦아 익히고

바른 믿음으로 마음이 하나 되어 모든 번뇌가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라.

눈으로써 색을 보면 마음에 맞고 맞지 않는 것 있네.

마음에 맞아도 욕심을 내지 말고 마음에 안 맞는다 미워하지도 말라.

귀로써 모든 소리 들으면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을 것 있네.

생각할 만한 것도 즐겨해 집착 말고 생각할 것 못된다 미워하지도 말라.

코로써 냄새맡아 보는 것 혹은 향기롭거나 더럽네.

향기로움과 더러움에 마음을 평등이 하여 욕심내지 말고 언짢아도 하지 말라.

먹는 바 여러 가지 음식에서도 또한 맛난 것 있고 나쁜 것 있네.

좋아하는 맛에도 탐욕을 내지 말고 나쁜 맛이라 또한 가리지 말라.

즐거운 촉감이 몸에 닿아도 거기에 빠져서 헤매지 말고

괴로운 촉감이 닿아도 너무 밉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평등하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서 멸하기 어려운 것을 멸하게 하라.

내 마음으로써 관찰하는 바 이것이나 저것의 온갖 모양을

참답지 않게 거짓으로 분별하면 욕탐은 갈수록 더욱 더하리.

저 모든 나쁜 것 깨달아 알고 욕심을 멀리 떠나 편히 머물러라.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거두어 잡아

여섯 가지 인식대상에 부딪쳐도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악마의 원수 무찔러 항복받고 나고 죽음을 건너 피안에 이르리라.

★.육바라밀(六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능히 모든 재물을 아끼지 않고 항상 남에게 이익될 일을 하며,

있는 대로 따라서 보시하되 다소를 묻지 않으며, 굶주리는 세상에서는 음식을 즐기어 주되,

은혜 갚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상이 있는 자면 이 사람은 곧 보시바라밀(布施)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고,

항상 부드러운 마음을 닦아서 죄과를 짓지 않으며, 설사 잘못하여 지었더라도

항상 부끄러워하고 뉘우치고, 착한 일에 기쁜 마음을 낼지니라.

중생을 보면 사랑하는 생각을 내며, 항상 인자한 마음을 닦고 모든 것을 가엾어 할지니라.

선남자여, 이 상이 있는 자면 이 사람은 능히 계바라밀(持戒)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중생이 설사 악한 일로 가해하더라도 한 생각도 성내는 마음이 없이 하며,

끝까지 악으로 갚지 않아야 하며, 만약 와서 뉘우치고 사과하거든 곧 받을지니라.

성을 냈거든 부끄러워하고 무서워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낼지니라.

선남자여, 이 상이 있는 자면 이 사람은 능히 인욕바라밀(忍辱)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큰일의 공덕을 지을 때

힘을 쓰는 것처럼 작은 일을 경영할 때의 마음도 역시 이와 같이할지니라.

일을 할 때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때와 때 아님을 보지 말며, 자신을 경홀히 하지도 말지니라.

그리고 착한 법을 닦을 때 다른 말을 따르지 않게 할지니라.

선남자여, 이 상이 있는 자면, 이 사람은 능히 정진바라밀(精進)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몸과 입과 뜻을 청정히 하고 공한처에 있기를 좋아하여,

혹은 굴이나 산이나 숲이나 빈집에 있으면서 심란하고 시끄러운 것과 침구를 좋아하지 않고,

세간의 일을 듣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먼저 부드러운 말을 하며, 즐기어 선정의 과보를 말할지니라.

선남자여, 이 상이 있는 자면 이 사람은 선정바라밀(禪定)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온갖 세간의 일을 배우되, 탐.진.치에 마음으로 탐하여

즐기지 않아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능히 부모와, 스승과 스님들과

나이 많은 이와 덕이 있는 분들에게 공양하며, 방일하지 않고 먼저 부드러운 말을 하며,

자기가 남보다 나아도 교만하지 않아야 하며,

괴로움을 받아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을지니라.

선남자여 이 상이 있는 자면 이 사람은 능히 반야바라밀(般若)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 우바새계경 ]

★.출 가

출가라 하면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스님이 되어 모든 세속적인 생활을 버리고

철저히 구도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출가를 한다고 하면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부처님은 출가시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친족을 떠나 온 까닭은

뒤에 큰 이익을 얻으려 꾀함이니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길이 미움과 사랑과 이별을 멸케 함이니라" <불본행집경>

이 말에서 부처님의 출가가 부처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부처님의 출가를 살펴보면 부처님은 싯달타 왕자시절에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싯달타 왕자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밑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이웃의 강국인 코살라국 사이의 마찰과

사촌인 데바닷타와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삶은 싯달타 왕자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전에서 보면 싯달타 왕자는 도성의 4대문에서 각각 노인과 병자와 장례행렬

그리고 사문을 보고 마침내 사문이 되기로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은 싯달타 왕자의 고민과 그 해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싯달타 왕자는 운명적으로 우리에게 지워진

삶과 죽음으로부터의 영원한 해탈을 추구하여 출가하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류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출가를 우리를 둘러싼 문제로부터의 도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싯달타왕자의 출가는 도피가 아닌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왕자의 지위와 부를 버리고 떠난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왕자로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부족함과 어려움이 없는 지위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며 그것을 인내해야 하는 지위를 선택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출가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와 결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출가가 있었기에 싯달타왕자는 출가를 해 사문이 되어 왕궁인

카필라바스투와 세상에서는 잊혀졌지만, 깨달음을 얻어

현재 부처님이란 이름으로 우리들 곁에 영원히 살아계신 것입니다.

★.열 반

이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시각이 가까와 온 듯했다.

부처님은 무수히 모여든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물어 보셨다.

"그 동안 내가 한 설법의 내용에 대해서 의심나는 점이 있거든 묻도록 하여라.

승단이나 계율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한 사람도 묻는 이가 없었다. 부처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어려워 말고 어서들 물어 보아라. 다정한 친구끼리 말하듯이 의문이 있으면 내게 물어 보아라."

이때 아난다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수행자들 중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습니다."

아난다의 말을 들으시고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다.

"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말아라.

물과 젖처럼 화합할 것이요, 물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라.

함께 내 교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은 평안히 열반에 드셨다.

진리를 찾아 왕자의 자리도 박차고 출가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행 끝에

지혜의 눈을 뜬 부처님, 사십오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해

몸소 자비를 구현한 부처님은 이와 같이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육신의 나이 여든으로 이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 가르침은

어둔 밤의 등불처럼 중생의 앞길을 밝게 비추고 있다.

이 지상에 인류가 살아있는 한 부처님의 가르침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안거(安居)

안거는 범어 바르사(Varsa)의 번역으로 비(雨),

장마철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며 지금의 결제를 뜻한다.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은 여름 비오는 계절 동안 활동에 의하여

무 의식적으로 저질러지는 살생을 막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서 행활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초기 불교 수행자들은 우기(安居)를 관계치 않고 여러 곳을 편력하면서

철저하게 무집착·무소유의 생활과 중생구제의 실 천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즈음 부ㅊ님의 제자 중 문제성이 심한 육군비구(六群比丘)들이 우기에 편력하다가

강물에 범람하여 의복(衣服)·발우·좌복 등을 물에 띄워 잃어버렸는가 하면

미생물과 초목을 밟음으로써 세속(世俗)의 뜻있는 거사(居士)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행(行)이 순결하고 자기각성(自己覺省)을 위하여 애쓰는 비구들은

수행자의 이미지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세상(世上)의 여론을 부처님 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육군비구여, 너희들의 행동은 청정한 것이 아니요,

사문(沙門)의 위의(威儀)가 아니며, 출가인의 법이 아니다.

거사들이 너희들의 잘 못을 지적하다가 삼보(三寶)를 비방하는 죄를 짓게 되었다." 하고

꾸짖으신 후 "비구들이여! 이제부터는 안거를지키도록 하라.

각자의 방과 침구 를 정돈하라. 누울 자리가 없으면 앉아서 하라.

앉을 자리가 없으면 서서 하라. 그대들이 안거를 위하여 왔을 때 바로 안거가 이루어진다.

비구들이여! 마땅한 곳을 골라 미리 말하고 안거하라.

수행에 장애 가 되는 일이 생기면 곧 떠나라.

안거 중 불가피한 일이 있으면 7 일 동안 출타를 허락하노니 기간 내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비구들이여! 안거를 미리 약속하고 지키지 않거나 안거 중 까닭없 이 떠나거나

대중의 화합을 파하거나 약속한 7일 안에 돌아오지 않 으면 법랍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안거를 지키기 않았기 때 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다.(사분율 37권)

현재 한국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과 10월 15일부터

1 월 15일까지 두 차례의 결제를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결제 기간은 한 곳에 모여 산문(山門) 밖의

출입을 금 하고 수행 정진에 몰두하도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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