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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지 (冬 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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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12-20 12:49 조회1,0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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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일) 동 지 법 회 

   겨울 중의 겨울, 한 해 중에서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가 내일 모레다.

음력 11월초순에 들면 애기동지 중순이면 중동지 11월하순에들면 노동지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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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스물두 번째이고, 해가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冬至線, 남회귀선 : 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 도에 도달하며, 양력 12월 22일 또는 23일에 온다. 올해는 22일이고, 대설과 소한의 중간에 있다.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해가 남회귀선, 즉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선에 도달한 때로 밤이 제일 길다. 반대로 남반부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다. 동지 이후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중근동(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지방,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이 동짓날을 설날로 지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작은설, 즉 다음 해가 되는 날이란 의미로 ‘아세 (亞歲)’라 했다.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 정도로 11월은 동지가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은 신약성서에 써있지 않아서 옛날에는 1월 6일이나 3월 21일을 성탄절로 지내기도 했지만 4세기 중엽이 되어서 로마 교황청이 성탄절을 동지설날과 같은 날로 정했다.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동짓날에는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에는 자기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었다고 한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다.


그러고 나서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고,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 절에서도 죽을 쑤어 중생들에게 나누어준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귀신을 쫒는다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지만 지금은 상관없이 쑤어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서 찾는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전염병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이야기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와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옛날 왕실에서는 동짓날부터 점점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다. 궁중에서는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임금의 도장(어새:御璽)을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매년 동지 때는 제주목사가 특산물인 귤을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종묘(宗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음식과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또 귤을 진상한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했다.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해에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하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속담에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동지 때 개딸기'란 말도 있는데 추운 동지 때에 개딸기가 있을 리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시어머니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해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는데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했다.


동지 때는 보통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보리밟기를 한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쌀에 든 돌 등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것인데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복조리를 부뚜막(아궁이 위에 솥을 걸어놓은 언저리)이나 벽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가득 들어오기를 빌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하지만 이때 아녀자들이 할 일은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와 무말랭이 등 각종 마른나물 말리고 거두기에 바쁜 철이다.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윷놀이와 곡식을 말릴 때 쓰는 멍석, 재를 밭에 뿌릴 때 쓰는 삼태기, 풀을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했다.


또 깊어가는 겨울밤 화롯불에 추위를 녹이며, 고구마를 찌거나 구워 동치미와 함께 먹기도 했는가 하면 달디 단 홍시감을 먹기도 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한밤중엔 “찹쌀떡 사~려, 메밀묵 사~려”하는 정겨운 소리를 들으면 잠들기도 했다.

 

<동지(冬至) 팥죽> 이야기

해마다 (양력)12월 21일 ~ 22일동지(冬至)이다.

24절기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는 가장길고 낮 시간(9시간 45분 정도)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음력)11월동짓달이라 부르는 것은 이 동지(冬至)가 들어 있는 (月)이기 때문이다.

동지(冬至)는 [아세(亞歲)] 혹은 [작은 설]이라고 불렸는데, 그것은 옛날에는 동짓달

정초(正初)로 생각했던 풍습(風習)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지엔 팥죽을 먹고 한살 더 먹는다고 했다.”

붉은 으로 을 쑤는데, 찹쌀가루로 새알 크기로 빚어 넣어 새알심으로 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동지(冬至) 팥죽에 세알을 넣는 것은 시작번영(繁榮)을 의미(意味)한다고 했다.

 

 

동지(冬至) 풍습

팥죽을 시절음식으로 삼아 사당(祠堂)에 고사하고 죽물을 대문에 뿌리면 (厄)을 제거 한다고 했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먹는 풍속(風俗)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中國) 육조시대의 후베이(湖北) 지방과

후난(湖南) 지방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중국(中國) (梁)나라의 ‘종름(宗懍)이라는

사람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기록을 보면 공공(共工)씨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천연두)귀신이 됐는데,

그 아들이 생전(生前)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물리 쳤다는 것이다.

곡물 중에서 유독 은 것이고, 붉다는 것은 우리말의 밝다 에서 온 말이며 귀신은 밝은 것, 즉

붉은 것을 싫어하므로 달아나거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대인의 원시사상이 작용

악귀(惡鬼)를 쫓을 때 주술로서 붉은 것을 사용하게 되었다.

 

동지에 팥죽을 먹고 뿌리는 것은 동짓날이 태양운행하는 시발점 이므로

고대에 이를 정월(정초)로 삼았던 데서 비롯된 것이며 당나라 때만 해도 한동안

그대로 유지 되어 오다가 역법(曆法)의 발달과 국가의 제정(制定)으로 1월

정월(正月)로 잡은 후에도 이 동지의 유속(遺俗)은 그대로 계승(繼承) 된 것이다.

 

동지풍습(冬至風習)은 주술적인 의미로 팥죽을 끊여 먹고 뿌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조선조 말기까지의 국주(國主 : 국왕) 풍습에도 살아있었다. 즉 관상감(觀象監)에서는 해마다

동짓달에 이듬해의 역서(曆書 : 한해 운수 역은 )를 만들어 궁중에 바쳤다.

역서(曆書)는 노란색으로 장정(裝幀)한 황장력(黃粧曆)을 제일로 쳤고. 그 다음이

청장력(靑粧曆), 백장력(白粧曆) 순서였는데, 은 이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임금의 도장)를 찍어 문무백관(文武百官)과 관아(官衙)에 나눠줘 새해가 옴을 알려줬다.

 

동지(冬至)는 그 드는 달이 상순에 들면 [애기동지] 하순에 들면 [(老)동지]로 불리기도 하는데.

애기동지일 때는 팥죽을 끓여 먹지 않는다는 속설(俗說)도 있었으나 그것은 잘못된 속설(俗說)이다.

그 속설이 생기게 된 동기는 옛날에는 식량이 풍부하지 않아 동지팥죽을 못 끓여 먹는 마음(心)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속설(俗說)로, 애기동지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팥죽 쑤는 요령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나와 있지만,

을 씻어 2 ~ 3시간 담가 두었다가 건져놓고. 팥은 잠길 만큼의 물을 붓고

삶은 첫은 버리고(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다시 넉넉한 물에 푹 삶는다.

삶은 을 주걱으로 으깨어 에 걸러 껍질을 버리고 팥물과 가라앉힌 앙금만 쓴다.

 

 

솥에 (새알심이 아님)을 넣고 팥물만 부어 끓이다가 쌀알이 퍼지면 가라앉힌 앙금을 넣고

눌어붙지 않게 은근한 불로 저으면서 끓이다가 팥물이 끓으면 새알심을 넣고 새알심이 익어서

떠오르면 불을 끊다. 소금으로 을 하고 식성에 따라 설탕을 가미 할 수도 있다.

새알심은 찹쌀 가루로 익반죽(따뜻한 물로 반죽)해서 동글동글하게 새알처럼 빚어 팥죽이 끓을 때 넣는다.

(소금으로 간을 하면 삭지 않는 장점이 있다.) 또한 팥죽에 동치미 국물을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제 맛이다.

 

팥은 외에도 에도 쓰이고 질역(염병)이 전염 되었을 때에 팥을 우물에 넣었으며,

경사가 있을 때도 팥밥을 하는데 모두 팥이 민속적으로 축귀(逐鬼 : 귀신을 쫓음)의 (力)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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